학비노조의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190624] 학교 내 비정규직 차별과 갑질 실태를 생생히 담은 "학교비정규직 수기응모전" 입상작 발표
보도자료 시행일:2019.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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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 : 박금자 / 담당자 : 박정호 정책실장(010-3238-3705) / E-mail : kctuedub@daum.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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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내 비정규직 차별과 갑질 실태를 생생히 담은 『학교비정규직 수기응모전』입상작 발표 “나는 학교에서 이렇게 차별받았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
< 당선작 : 오늘 THE 투쟁> | ||
“당시만 해도 무기계약이 아닌 매년 공고 서류를 내며 재계약을 맺는 상황이었기에 행여나 임신으로 인해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태교는 꿈도 꾸지 못 하고, 퇴근 후 링거를 맞아가면서도 미련할 정도로 힘든 내색 없이 씩씩하게 열 달을 버텼다. 좋은 동료들을 만나 많은 배려를 받았음에도 “예산이 없는데 산휴비를 어디서 빼야하나.. 아이들 도서는 올해 못 사겠구나...”라는 식의 지나가는 푸념들이 비수가 되어 꽂힘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내 인건비가 예산에 포함되어 있어 나 같은 임산부가 있으면 아이들에게 교재교구도 마음껏 사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을... 나는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말았지만 뻔뻔하게 묵인할 수 밖에 없었다.” “단설의 새 원장은 이 계약이 상위법인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8시간 근무에 1시간 휴게시간을 포함하여 총 9시간으로 다시 계약하자고 했다. 처음으로 노조의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대전은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노조에서는 지방공무원복무조례와 동일하게 적용하여 8시간을 근무하는게 맞다고 하였고, 이 말을 원장에게 전하자 내부의 일을 외부에 알렸다며 온갖 분노 섞인 말들로 역적 취급을 했다. 그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아 일 년간 매일같이 매서운 눈초리를 마주해야만 했다.단설로 개원을 하고 약 한 달 뒤 개원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를 앞두고 모든 교직원이 밤낮을 잊은 채 시간 외 근무를 했다. 밤 11시가 되어 한껏 굽은 허리를 힘겹게 펴며 퇴근하는 일이 잦았지만 대부분의 날은 무료봉사였다. 교사들은 근태를 기록하여 수당을 받았지만, 예산사정이 좋지 않아 나를 포함한 비정규직들은 수당을 지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지문인식기 퇴근 알림 인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던 어느 여름 날 아침엔 손님맞이를 위해 우산을 쓰고 유치원 주변의 잡초뽑기도 해야했다. 상명하복의 지독한 상하관계의 꼭대기에 있는 관료들에게 복종이 아닌 반발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에 불과했다. 비정규직의 업무는 학교장의 재량에 지정되기 때문이다. 정말 불합리한 구조가 아닐 수 없다!“ “방학은 또 왜 이렇게 긴 건지.. 유치원은 초등학교보다 방학이 더 길어 1년에 15주 정도 된다. 52주 중 15주를 혼자서 아이들을 보는데 어떻게 교육을 배제한 돌봄이 가능할 수 있는 건지, 그저 우리가 요구하는 수당을 주지 않기 위한 교육청의 횡포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전교생 앞에 영상으로 소개된 내 직종은 존재하지도 않는 ‘유치원실무원’이었다. 비정규직이기에 가장 마지막에 소개를 받았다. 행여나 아이가 엄마가 비정규직인 것을 알고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유치원실무원이 뭔지 물어보면 어쩌나... 괜히 이 곳으로 내신을 냈나 온갖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3학년인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은 나를 그저 병설유치원의 선생님으로 차별 없이 받아들여주었다.” - 나아름(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전지부 유치원방과후과정전담사) |
< 우수작 : 학교 비정규직이 가는 길 영원히 꽃길이여라> | ||
“절단기 사용금지라는 명목으로 부스러기가 많아서 음식이 지저분하다고 1000명의 식수 인원을 조리원 6명이 하루 2시간 이상씩 칼질을 하면서 매일매일 일을 하였습니다. 자꾸만 아파오는 어깨를 진찰할 때 얼마 못 가서 수술을 해야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과도하게 사용해서 염증이 심하다고 쉬어야 낫는 병이라며 쉬라고 했지만 먹고 살아야 하기에 그냥 미련하게 일을 계속할 수 밖엔 없었습니다.” “아프던 어깨를 결국 무너져 내렸습니다. 2013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너무나 아파서 진통제 처방을 받으면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방학 중 수술을 받으러 병원을 갔더니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사람이 이렇게 미련할 수 있느냐면서 회전근계파열이 이렇게 녹아내린 사람은 처음 본다면서 응급으로 수술을 하자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수술의 두려움보다 학교 병가를 14일밖에 없다는 것이 제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최소 6개월이 필요한 수술과 재활 치료를 다 채우지 못하고 5개월 만에 학교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쥐꼬리 만한 월급이지만 매달 들어오지 않으니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 “산재신청을 알아 보면서 산재신청은 일하면서 누적된 사실을 증명해야 된다기에 영양사에게 산재를 신청을 한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도움을 청한 영양사조차 본인은 산재신청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고 일관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제가 산재신청을 한다는 이야기가 교장선생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저를 불러다가 산재신청을 하면 학교에 불이익이 생기니 하지 말라며 저에게 회유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저를 불러 저를 회유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너무 분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나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해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산재 신청을 위한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우리 조리원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어야 했던 밥통, 국통의 무게, 1000명이 먹을 식재료의 무게 등등 모든 것을 조사하였습니다.” “2주후 드디어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산재판정위원회가 열리는 날짜를 알려주었고 저는 해당 날짜에 맞춰 산재판정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나갔습니다. 산재판정위원회에 나가는 그날 당일도 저는 오전에 일을 하고 오후에는 병원에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로 인하여 산재판정위원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을 교장선생님이 저에게 얼토당토 않은 핑계로 저에게 산재판정위원회에 가지 말라고 회유를 했기 때문입니다.” “9명의 산재위원회 판정단들 앞에서 나의 지나온 일들을 얘기하라는 위원장님 말씀에 힘들었던 일들과 조리원들의 위험한 현장등을 얘기하면서 서러움에 목이 메었습니다. 더욱이 앞으로 희망하는 일들에 대해 얘기하라는 위원장님의 질문에 저는 “나 혼자의 산재 판정의 문재가 아니고 수만명이 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며 처우개선이 필요하다”고 얘기 했습니다. 덧붙여 “아무리 힘들어도 제가 한 따뜻한 밥을 먹고 ‘잘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학생들을 볼때면 일 하는 보람과 긍지를 가지게 됩니다.”라고 또렸이 이야기 했습니다. 돌아서 나오는 내 마음도 너무나 홀가 분 했습니다.“ “이후 제가 작성한 산재신청 서류에 기초하여 다른 비정규직 조리원도 산재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의 작은 노력이 나아가 우리 대구지부의 보탬이 되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됬다는 것이 너무 뿌듯하기도 했고 그동안 했던 노력이 성과를 얻는 것 같아 너무 행복했습니다.” - 손태련(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 급식조리원) |
< 우수작 : 본질 바로 보기 연습 중> | ||
“그 교감선생님은 우리 비정규직을 돌아가며 비싼 저녁을 사주었고 시키는대로 움직였으면 한다는 생각을 전하였다. 한마디로 “밥 사주니까 조용히 일해”라고 들렸다. 여지껏 함께 하였던 교장,교감선생님들과 다르게 대하였다. 늘 대단하게 믿어줬던 분들과는 달리 비정규직을 무시하는 것이 눈에 보였고 점점 관계는 나빠졌다. 그래서 2016년 내신 때 행정실무사3명과 영양사가 한꺼번에 학교를 빠져 나오는 일이 생겼다.” “인사발령을 받고 옮겨간 학교에서는 교감이 처음 본 내게 인사를 받으며 하는 말 “왜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온거야!” 저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걸까? 순간 뭐가 잘 못 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1년간 그 또 그 교감과 어려운 학교생활을 하며 상처를 받았다. 실무사는 문서접수 이외에 그 어떤 일도 관여하지 말고 잡일 만 하라는 거였다.” 학교라는 작은 공간에서 실무사가 실무사를 무시하고 먼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이유로 갑질을 하고 교사와 한편이 되어 같은 직종의 실무사를 힘들게 하고 있고, 교원들은 우리를 존중보다는 무언으로 무시하기도 하고 실무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큰일이라도 나듯이 꼭 “실무사”라고 부르고 학생들도 “실무사”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묻는다 실무사가 뭐하는 사람이냐고.?? 학교를 졸업해서 성인이 되어가는 학생들에게 벌써 차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얼마전 겪은 일이다. “실무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니까 진짜 선생님인줄 아나본데 착각하지 말아요 선생님은 실무사입니다” 내가 무엇을 착각했던 것일까? 난 늘 실무사 그 자리에서 한결 같이 내 일을 하고 있었는데...그래서 나는 그 교사에게 말했다. “그러면 저도 이제부터 000교사라고 불러드리겠습니다. 학교에서는 직책을 부르지 않고 호칭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걸 아직도 모르셨나 보네요...” 어찌어찌하여 그 교사는 내게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지만, 난 평생 이 일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교육공무직의 본질은 무엇인가? 학교에서 여러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직종인가? 아니면 소외된 직종인가? 아니면 학교에서 교원과 지방공무원외 다른 구성원으로서의 교육공무직으로 역할을 하는 직종인가? 우린 분명히 교육청에서 채용한 교육공무직으로 교원, 공무원외에 직원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부당함을 견디고 이겨야하는 직종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마하게 급여를 받고 살만하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본인들의 자식들에게 추천해 줄 수 있는 직종인가 싶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하고 교육청은 우리에게 직원으로 대우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서 나는 우리 교육공무직을 채용한 교육청에게 계속 요구하고 우리의 권리를 찾고자 한다” “내가 학교에서 행정실무사로 왜 일하고 싶어하는가? 나는 교육공동체가 하나로 묶여 서로의 자리에서 학생은 인성과 학업을 교원는 학생에게 가르침을 지방공무원과 우리 교육공무직은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우리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는데 도움이 되는 곳에서 일하는 자부심이 있기에 적은 월급에도 이렇게 15년을 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당국은 어떠한가? 이런 마음으로 일하는 나를 기만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처우를 알아서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파업과 투쟁으로만 주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 스스로가 만든 노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내 스스로 느끼는 본질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우리만 알고 있지 않은가? 차별 속에서 부딪치지 않으려 상처 받지 않으려 먼저 일을 하고 칭찬을 받고 우리 스스로 이 속에서 자존감을 높이고 있다. 이러지 말고 당당하게 일어 났으면 한다. 우리의 권리를 찾으러 우리 함께 모두 함께 힘을 모았으면 한다. 우리를 누가 지지해주지 않더라도 우리가 서로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나는 나의 동료와 후배들에게 말한다. 당당하게 7월 총파업에 모두 함께 나가야한다고... 모두 힘든 투쟁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나도 그리 생각된다.“ - 이선재(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행정실무사) |